언론기사

[오피니언]한전 부지, 돈이 아니라 토지를 보라

한겨레신문 2015년 10월 16일자 기사입니다. 이인근 (LH토지주택연구원 원장) 현대자동차그룹이 인수한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이전 부지 개발에 따른 공공기여금 약 1조7천억원을 두고 서울시와 강남구의 갈등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강남구는 자기 구에 국한하여 사용하자는 입장이고, 서울시는 인접지역까지 확대를, 서울의 다른 구청장들은 서울시내 전역에 골고루 사용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부지를 어떻게 개발할지는 안중에도 없고 모두가 개발이익금 사용에만 관심을 갖고 있어 씁쓸하다. 우선 공공기여금이 왜 발생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래 한전 부지는 주거지역으로서 용적률 250%까지 개발할 수 있었으나 소유주는 상업지역으로 변경하여 800%까지 개발하고자 한다. 이럴 경우 막대한 개발이익이 발생하므로 일정 부분을 공공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도시계획 변경에 따른 이익 환수 시스템이자 과밀 방지 시스템인 것이다. 지금까지 서울시는 주거지역을 상업지역으로 상향조정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을 뿐 아니라, 그 경우에도 개발이익은 토지로 환수했다. 다시 말하면 약 8만㎡인 한전 부지의 경우 상업지역으로 변경하면 부지 면적의 40%인 3만2천㎡는 인프라 확충 등 공공이 사용하고 나머지 4만8천㎡는 상업지역으로 개발하도록 하는 것이다. 반면 한전 부지 개발에서는 토지 대신 금전으로 받고 전체를 상업지역으로 개발하도록 한다는데, 이는 적절치 않다. 첫째, 강남지역의 개발 배경을 살펴볼 때 공공토지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강남지역은 70년대 중반부터 서울로 밀려드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하여 농경지를 주거지로 개발한 곳이다. 신도시였음에도 지금처럼 차근차근 계획되지 못하여 주거지와 필수적인 교통 인프라만 갖추었다. 요즘 만들어지는 신도시의 녹지 면적은 약 30%에 이르나 강남지역은 3% 정도에 불과해, 제대로 된 공원이나 광장이 없는 삭막한 지역이 되고 말았다. 시간이 걸려도 강남을 재개발하며 부족한 녹지 등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삼성동 지역은 케이티엑스(KTX), 지티엑스(GTX) 등 국가의 주요한 교통 인프라가 계획되고 있는 곳이어서 오픈스페이스 확보가 절실하다. 한전 부지 개발은 강남 재개발의 신호탄일 수 있다. 재개발을 하며 공공 공간을 확보하는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둘째, 강남북 균형발전 측면에서도 삼성동 지역의 과밀개발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20여년간 서울 도시계획의 핵심은 침체한 강북을 활성화해 강남북 균형을 맞추려는 것이었다. 도심 활성화 사업, 성곽 복원, 청계천 복원,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한옥 보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제 어느 정도 성과가 나타나려는 참에 삼성동 지역을 과밀개발하면 균형추는 격차가 더욱 심해지고, 앞으로 회복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강북의 구청장들도 개발이익금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강남 과밀개발이 가져올 강북의 미래를 걱정해야 한다. 공공기여를 금전 대신 토지로 받는다면 도시의 과도한 개발을 방지하고 강남북 균형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전력은 삼성동에 30년 머물렀다 정부 정책에 따라 이전했다. 그러나 이번 민간개발의 흔적은 앞으로 100년은 유지될 것이다. 현금 1조7천억원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러나 토지는 영원히 남는다. 어느 쪽이 책임있는 토지 사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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