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기사

[시론] 종합심사낙찰제가 성공하려면

건설경제신문 2015년 9월 23일자 기사입니다. 이인근 (LH 토지주택연구원 원장) 우리나라 공공공사의 입찰 제도는 장기적인 비전과 목표가 실종된 상태에서 경제여건 변화, 대형사고 발생 그리고 업계 안팎의 요구에 따라 가격경쟁 중심 낙찰방식과 적격심사방식의 도입, 확대, 폐지를 반복해왔다. 그 결과 현재 공공건설시장은 극심한 경쟁, 수익성 저하, 입찰담합에 따른 무더기 제재와 같이 부정적인 이미지로 얼룩져 있다. 이러한 와중에 내년으로 예정된 종합심사낙찰제(종심제)의 본격적인 도입은 시설공사 발주를 둘러싼 그간의 논란을 잠재우고 업계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종심제는 최저가낙찰제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문제, 즉 기술력 평가 미흡, 운찰적 속성, 덤핑, 품질저하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대책으로 공사수행능력, 입찰금액, 사회적 책임, 계약신뢰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낙찰자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2014년부터 시작된 종심제 적용 시범사업은 올해 4대 SOC공기업에서 총 30건을 선정하여 지난해 대비 두 배 정도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지금까지 시행된 시범사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결과는 낙찰률 상승으로 가격평가 방식에 따라 유동적일 수도 있으나 예산절감을 우선 고려하는 발주기관과 적정공사비 확보를 요구하는 업체의 요구가 수렴되는 78~80% 수준에서 낙찰자가 선정되고 있다. 또한 정부와 발주기관은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중소건설사에 대한 진입장벽, 일부업체의 수주 독점 등 부작용을 해소하고자 만점구간 축소, 단가심사 미실시 등을 통해 가격평가 기준을 다양화하고, 공동수급체 참여 심사항목을 신설하였다. 한편 올해 초 600개가 넘는 업체들이 공동으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채택한 바 있는 건설업계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낙찰률이 상향되면서 전반적으로 종심제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이 늘어났으나 여전히 기업 규모, 시공 실적에 따라 그룹별로 득실을 따지고 있다. 지난 해 시범사업 이후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건설업계는 덤핑입찰 예방, 적정공사비 제공, 운찰제 방지 효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였고, 종심제 시행이 현장 품질향상과 안전시공, 설계변경 축소, 공사기간 준수 등 사업성과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하는 의견이 많았다. 반면 변별력 확보와 담합 방지를 위해서는 다소의 보완이 필요하며, 기존 제도에 비해 투명성, 낙찰기회의 균등성이 하락하면서 특정그룹에 유리한 제도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시범사업은 제도를 보완하고 관련 주체들이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할 때, 본격 시행에 앞서 적극 검토할 몇 가지 과제가 있다. 우선 제도적인 측면에서 가격평가의 변별력이 낮아 공사 수행능력 평가결과가 낙찰자 선정에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면 일부 업체에 유리한 상황이 조성될 수 있으므로 평가부문 사이의 변별력이 균형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과거 실적 위주의 간접평가에서 나아가 입찰 대상 공사에 대한 참가자의 이해도와 수행계획을 직접적으로 평가함으로써 공사여건을 반영한 기술적 차별성이 부각되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그리고 평가기준에 있어 종심제와 중복되는 요소를 가진 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PQ)와의 관계 역시 보다 명확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공공부문에 관련된 여러 주체들의 인식 변화와 실행의지가 중요하다. 그간 공공 발주자들은 감사 혹은 예산낭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획일적 입찰방식을 적용해 왔다. 이제 책임성을 바탕으로 공사특성에 맞는 최적의 발주기준을 선정하고 참가자들의 기술력을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발주자의 노력이 없으면 종심제 또한 획일화될 가능성이 높다. 건설업계 역시 변화해야 한다. 대부분의 시범사업에서 투찰률이 기준단가 산정방식과 단가심사 감점범위에 따라 한정된 범위에 수렴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여전히 과거 전략적 투찰의 관성이 이어지고 있다.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겠지만 각 업체는 정부의 인위적인 물량배분이나 운에 기대기보다는 차별화된 기술전략 수립과 공사비 산정이 가능하도록 경쟁력을 배양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범사업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에 대해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현실의 테두리 안에서 장기적 관점의 목표 달성을 지향하는 것이다. 즉 종심제로부터 출발한 발주제도 변화가 건설업계 전반의 기술수준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시설공사 발주제도는 그 나라 건설업계의 맨얼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다. 건설산업은 전후방 효과가 큰 산업으로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도구로 빈번하게 활용되면서, 산업 기저에 자리잡은 후진적 요소를 바로잡을 기회를 여러 번 놓쳤다. 내년부터 본격 시행되는 종심제가 얼마 남지 않은 시범사업 기간 동안 산업의 장기목표에 대한 상호 공감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제도 시행을 위한 해법을 찾아, 건설산업 선진화를 위한 계기를 마련하고 당초 의도했던 결실을 거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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